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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우주는 텅 빈 공간이다. 별이 떠 있고, 행성이 돌고, 은하가 부유하는 그 광대한 공간은 대부분 ‘진공 상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진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따라붙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진공 상태에서는 색이 없다”는 문장이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색이 사라진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 보는 화려한 우주의 이미지들은 거짓일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빛과 시각, 그리고 ‘색’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1. 색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빨간색’이나 ‘파란색’이라는 고유한 존재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파장이 눈에 들어와 뇌에서 해석된 결과일 뿐이다. 인간의 눈에는 가시광선이라 불리는 특정 범위의 전자기파만 보인다. 이 파장은 대략 400~700나노미터 사이이며, 이 범위를 넘는 자외선이나 적외선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빛이 어떤 물체에 반사되거나 산란되면 그 반사된 빛의 파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정보를 뇌가 ‘색’으로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색은 객관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인지적 결과물에 가깝다.
2. 진공 상태에서 색이 ‘보이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진공 상태에서 왜 색이 보이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진공 상태는 대기나 물질이 없는 공간이다. 빛이 어떤 매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빛을 인식할 수 없다.
빛은 직진한다. 그 빛이 산란되거나 반사되어 눈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그 빛을 볼 수 있다. 진공 상태에서는 산란도, 반사도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빛이라도 눈에 직접 들어오지 않으면 색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국 진공에서는 빛이 존재하더라도, 그 빛이 눈에 도달하지 않으면 ‘색’도 함께 사라진다.
3. 지구에서의 색 vs 우주에서의 색
지구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색’은 대기라는 필터를 거친 빛의 결과물이다. 지구의 대기권은 산소와 질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빛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각적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태양빛이 대기층을 통과하면서 산란되는 과정에서 짧은 파장의 푸른 빛이 공기 분자에 의해 더 많이 흩어지기 때문에 하늘은 파랗게 보이게 된다. 이를 ‘레이리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라고 하며, 이 현상은 인간의 시각 체계와 맞물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지하는 하늘의 색을 결정짓는다.
뿐만 아니라, 일출과 일몰처럼 태양빛이 대기를 더욱 길게 통과할 때는 푸른 파장이 대부분 산란되어 사라지고, 남은 긴 파장의 붉은 빛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하늘은 오렌지색에서 붉은빛까지 다양한 색으로 물들게 된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의 색은 단지 물체 고유의 색뿐만 아니라, 빛이 어떻게 전달되고 변형되며 눈에 도달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주는 이러한 ‘대기’라는 필터가 없다. 우주의 대부분은 거의 완벽한 진공 상태로, 공기 분자나 먼지 입자 등 빛을 산란시키거나 반사시킬 수 있는 물질이 극히 희박하다. 이로 인해 태양빛과 같은 강력한 광원도 산란 없이 직진하며, 그 빛이 우리 눈에 직접 도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태양을 직접 바라보면 강렬하고 눈부신 광채를 느끼겠지만, 태양을 등지고 주변을 보면 그 방향에는 아무런 산란 빛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캄캄한 어둠만 보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주에서는 색 자체가 거의 인식되지 않는다. 색을 보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조건, 즉 빛의 존재와 그 빛이 눈에 들어오기 위한 반사 또는 산란 매질 중 후자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에서는 빛이 있더라도, 그 빛이 특정 물체를 반사하거나 우리의 눈에 직접 들어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무색’, 또는 ‘검정’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우주인들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태양빛이 직접 닿는 표면은 아주 밝고 선명한 반면, 바로 그 옆의 그림자지는 부분은 완전히 검게 보인다. 지구에서는 그늘진 부분도 주변 빛의 반사나 대기 중 산란된 광량 덕분에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지만, 우주에서는 이러한 간접광마저도 극히 적기 때문에 명암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색의 존재를 단순히 ‘있는가 없는가’로 나누는 게 아니라, 환경적 조건에 따라 색의 존재 자체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지구에서는 대부분의 색이 복합광 또는 반사광으로 인식되지만, 우주에서는 대부분의 색이 발광체 자체에서 나오는 직접광이거나, 극히 제한적인 반사광이다. 이는 우리가 우주 사진에서 접하는 별빛이나 성운의 빛이 대부분 ‘자기 발광’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지구에서는 흰 셔츠에 비친 햇빛도, 풀밭의 녹색도 모두 반사광 덕분에 인식되지만, 우주에서는 반사광의 기회 자체가 매우 적기 때문에, 색을 보기 위한 ‘조건’이 매우 제한적인 셈이다.
결국 지구에서의 색은 대기와 빛의 조합이 만든 풍부한 시각 정보의 결과이지만, 우주에서는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색의 폭이 훨씬 제한적이다. 이 차이는 인간이 지구라는 조건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도록’ 적응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색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환경 의존적인지를 말해준다.
4. 허블 사진 속 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허블 우주망원경이나 제임스 웹 망원경이 보내오는 우주의 이미지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붉은 빛, 푸른 빛, 자줏빛으로 물든 우주의 모습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 대부분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된 색’이다.
많은 경우, 이들 망원경은 가시광선 외의 전자기파를 감지한다. 자외선, 적외선, X선 등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특정 파장에 임의의 색을 부여해 시각화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우주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지만, 데이터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즉, 허블 사진 속 색은 우주의 본질적 색이라기보다는 우주의 파장을 번역한 인간 중심의 시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5. 진공 속에서 색을 보려면 필요한 조건
그렇다면 진공 상태에서도 색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빛이 어떤 표면에서 반사되어 눈에 도달한다면, 진공 속에서도 색은 인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달에서 바라본 지구는 푸르게 보이고, 우주선이나 위성 표면에 반사되는 태양빛도 그 재질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인식된다.다만 이 경우에도 그 색은 어디까지나 빛이 반사된 결과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진공 자체는 색이 없지만, 그 안에 있는 물체가 빛을 반사하거나 발산할 경우 우리는 색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우주에서도 특정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색이 존재할 수 있다.
6.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결정하는 색의 존재
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시각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인간은 세 종류의 원추세포(적, 녹, 청)를 통해 파장을 감지하고, 이 조합으로 다양한 색을 인식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방식으로 색을 보는 것은 아니다.
벌은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고, 일부 동물은 적외선도 인식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인간과 전혀 다른 ‘색의 세계’가 펼쳐진다.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도 인간이 보지 못하는 파장이 존재하며, 이를 우리는 색으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진공 상태에서 색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눈과 뇌가 인식할 수 없는 범위에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진공에서 사라지는 것은 색이 아니라 ‘인식’이다
진공 상태에서 색이 사라진다는 말은, 실제로 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색을 인식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색은 실체가 아니라 감각이며, 빛과 눈, 뇌라는 삼박자가 맞아야만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진공 상태에서는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빛이 눈에 도달하지 않거나, 산란될 매질이 없기 때문에 색을 감지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리는 우주의 극히 일부분만을 시각적으로 경험하고 있고, 그 바깥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빛과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다.
색은 결국, 보는 자의 눈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눈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아무리 많은 빛이 있어도 우리는 ‘무색’의 우주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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